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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는 체험활동이나 박물관 이외에도 볼거리가 아주 많은 곳입니다. 특히 여주는 역사적으로 깊은 흔적들이 남아있는 도시로, 여주에서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싶다면 꼭 가보아야 할 장소 3곳을 추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옛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영릉(英陵 세종대왕릉, 寧陵 효종대왕릉)", "신륵사", 그리고 "명성황후생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릉(英陵 세종대왕릉, 寧陵 효종대왕릉)
영릉(英陵, 세종대왕)
한글 창제의 위대한 성공자이자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 씨의 합장릉, 영릉에 대한 설명입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왕조에서 가장 위대한 성군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업적은 여러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그는 한글 창제, 측우기와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 발명, 아악 정리와 북방 정벌 등으로 국가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합장릉은 그의 위대한 업적을 잘 나타내는 곳으로, 석주에는 12 간지를 문자로 새기고 혼유석으로 합장릉임을 나타냅니다. 능 안에는 장명등과 석호, 석양, 석마, 문인석, 무인석, 망주석 등이 둘려져 있으며, 정자각에는 능비와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세종전과 함께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매년 5월 15일에는 세종대왕릉에서 세종대왕탄신 숭모제전과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이곳은 한글날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와 제례가 진행되는 곳으로써도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 씨의 합장릉인 영릉은 조선시대의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한글 창제와 다양한 과학기구의 발명으로 역사에 길이 남은 대왕의 능입니다. 영릉은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두르고, 능 주변에는 12개의 석주에 12 간지가 문자로 새겨져 있어 조선왕조의 능제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능 중앙에는 팔각의 장명등이 자리하며, 석호, 석양, 석마, 문인석, 무인석, 망주석 등이 배치되어 있어 화려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능 주변에는 정자각, 수복방, 수라간 등이 위치하고 있으며, 정자각 일원에는 해시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등이 복원돼 있어 세종대왕의 학문적 업적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합장릉인 영릉은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한글날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는 곳으로, 역사와 과학, 문화의 조화를 감상할 수 있는 중요한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영릉(寧陵, 효종대왕)
조선 제17대 효종과 왕비 인선 왕후 장 씨의 쌍릉인 효종릉은 조용하고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으로 인해 중국 선양에 8년 간 갇혀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풀려나와 1649년에 왕세자로 즉위했습니다. 그 이후 효종은 대동법을 시행하고 화폐를 보급하는 등 국정에 참여했으나, 청나라 정벌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1659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습니다. 효종릉은 효종과 인선 왕후의 묘소로서 특이하게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한 효종의 능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영릉은 효종릉과 함께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효종릉은 찾는 이가 적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세종릉과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조용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효종대왕릉 회양목
효종대왕릉(영릉)에 자리한 회양목은 대한민국 경기도 여주시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년에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조선조 제17대 효종대왕과 인선왕후 장 씨의 쌍릉인 영릉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재 위치로는 1673년에 천장 되었습니다. 특히, 영릉의 재실은 조선조 왕릉 중에서도 건물의 구조와 배치가 뛰어나게 평가받고 있으며, 그 안에 위치한 회양목은 잎이 두껍고 타원형이며 4,5월에 꽃을 피우고 6,7월에는 갈색의 열매가 익는 특별한 나무로써, 생물학적 가치와 역사적인 중요성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신륵사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변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경기도 화성시)의 말사로, 강변에 위치한 특이한 절입니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 시대에 원효에 의해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신륵'이라는 절 이름은 '륵(勒)'이라는 말굴레를 의미하며, 이는 고려 우왕 시대에 인근의 마암에서 나타난 용마를 묘사한 신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1376년에는 고려 말기의 고승 나옹화상이 회암사의 주지로서 중창불사를 했다가 탄핵을 받아 유배길에 신륵사를 찾아가 입적했습니다. 나옹화상의 제자들은 그의 사리를 회암사와 신륵사에 나누어 부도탑을 세웠고, 현재도 신륵사에는 나옹화상의 부도탑이 남아있습니다. 이 절은 조선불교계에서 3 화상으로 여겨지며, 신륵사에는 나옹의 스승인 범승, 지공, 나옹, 그리고 두 승려의 공동제자인 무학을 기리기 위해 조사당이 세워졌습니다.
신륵사는 또한 여러 중요 문화재로 꼽히는데, 그중에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 다층전탑 등이 있습니다. 특히,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은 국내에서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으로써 그 가치가 큽니다.
명성황후생가
명성황후 생가는 경기도 여주시 여주읍 능현리에 위치한 대한제국 고종의 비 명성황후가 어릴 적을 보낸 곳으로, 1973년 7월 10일 경기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생가가 복원되어 있으며, 감고당과 명성황후 기념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여주에서 태어나 16세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개화정책을 주도하며 정치에 참여했으나, 을미사변으로 일본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현재는 안채와 행랑채, 사랑채 등이 함께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곳은 명성황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명성황후 기념관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생가 주변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비와 민유중의 묘, 그리고 명성황후 기념비 등이 있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명성황후는 역사적으로도 너무 유명한 인물이라 영상으로 많이 제작이 되었습니다. 명성황후 드라마(2001년), 뮤지컬 명성황후(1995년) , 명성황후의 사랑을 다룬 영화 ' 불꽃처럼 나비처럼'(2009년),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2013년), 뮤지컬 '영웅'(2009년) , 영화 '영웅'(2022년)등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다른 관광명소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여주시는 역사적으로 많은 유적지와 유물이 있는 곳입니다. 역사에 많은 관심이 있거나 학습의 목적이 있으신 분들은 꼭 들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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